슈퍼박테리아와 싸우는 감미료의 진실

📝 목차
1. 사카린이란? 2.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란? 3. 사카린이 박테리아를 억제한다고? 4. 실제 치료제로 쓸 수 있을까? 5. 일반인이 걱정하거나 기대할 필요는? 6. 자주 묻는 질문 (FAQ) 7. 마무리 조언
사카린(Saccharin)은 화학적으로는 오설파벤조산(imide of o-sulfobenzoic acid)에서 유래된 화합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감미료 중 하나입니다.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처음 합성된 이래, 100년 넘게 인류와 함께 해온 감미료이죠.
사카린은 설탕보다 약 300~500배 더 강한 단맛을 지니면서도, 거의 칼로리가 없어 체중 조절을 위한 식단에 자주 사용됩니다. 특히 당뇨병 환자나 저당 섭취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식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사카린은 대부분 체내에서 대사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기 때문에 혈당 수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도 사카린을 안전한 식품첨가물로 분류하고 있으며, 가공식품·다이어트 음료·저당 과자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맛을 내되, 설탕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이죠.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는 더 이상 기존 항생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박테리아를 뜻하며, ‘슈퍼박테리아’라고도 불립니다. 이러한 세균은 항생제의 공격을 피하거나, 아예 항생제를 분해해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으로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 MRSA: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병원 내 감염의 대표적인 원인
- VRE: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 요로감염, 패혈증 등 유발
- CRE: 카바페넴계 항생제 내성 장내세균. 가장 강력한 내성균으로 평가
이러한 세균에 감염되면 기존 항생제로는 치료가 어렵고, 고열, 패혈증, 장기 손상 등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사망률도 높습니다. 실제로 WHO는 “항생제 내성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매년 약 1,000만 명이 내성균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사카린이 단지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만 사용되어온 것이 아니라,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 대한 ‘보조 항균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과학계에 알려지면서 연구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3년, Cell Chemical Biology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사카린은 다제내성 크레브시엘라 폐렴균(Klebsiella pneumoniae)을 대상으로 했을 때 항생제의 항균 효과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사카린을 기존 항생제(예: 콜리스틴, 티겔라신)와 함께 처리한 결과, 내성균의 생존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즉, 사카린 자체가 균을 죽이는 ‘항생제’는 아니지만, 항생제의 작용을 보다 강력하게 해주는 ‘항생제 보조제(potentiator)’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사카린이 내성균의 세포막 투과성을 높이고, 박테리아의 대사와 에너지 생산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항생제가 보다 쉽게 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합니다.
- 세균의 세포막을 약화시켜 항생제 침투력 상승
- 세균 내 대사 경로 및 에너지 생산 방해
- 다제내성 균주(MDR)에 대한 항균 효과 강화
- 특정 항생제(콜리스틴, 티겔라신 등)와 병용 시 효과 큼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효과가 사카린처럼 인체에 안전하다고 알려진 물질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후속 연구와 임상시험을 통해 이 효과가 확인된다면, 우리는 향후 기존 항생제의 효과를 높이는 ‘보조 약물’로 사카린을 활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실험실 수준의 전임상(pre-clinical) 실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세포 수준에서 사카린이 항생제 효과를 보조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이를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까지는 많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현재로서는 사카린 단독으로는 박테리아를 사멸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존 항생제가 효과를 내지 못했던 내성균에 대해, 복합 치료 전략으로 활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의학계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염내과, 약리학, 미생물학 분야에서 “비항생제 물질의 항생제 강화 작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사카린은 그 대표적인 후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NIH(국립보건원), 유럽 EMA(의약품청) 등에서도 내성균 문제 해결을 위해 항생제 보조물질의 가능성에 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내 연구진들도 사카린 유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화합물을 실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카린 항균 관련 실험 요약 | 설명 |
---|---|
연구 기관 | 한국화학연구원, 셰필드대학교, 서울대 약대 등 |
대상 균주 | CRE, K. pneumoniae, MRSA, E. coli 등 |
병용 항생제 | 콜리스틴, 시프로플록사신, 티겔라신 |
결과 | 균 생존율 현저히 감소, 항생제 MIC 감소 |

이쯤에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제로콜라를 매일 마시면 슈퍼박테리아도 예방되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식품에 들어가는 사카린의 양은 극히 미량이며,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대부분 배출되기 때문에 박테리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농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즉, 제로음료나 무설탕 껌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항균 작용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카린 분자의 가능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식품첨가물로만 쓰이던 물질이, 내성균을 억제할 수 있다는 단서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발견입니다. 이로 인해 관련 유도체 개발이나, 사카린 기반 신약의 개발 가능성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건강상의 이점을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이 연구는 향후 항생제 개발, 특히 다제내성균 치료 옵션 개발에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카린은 항생제가 아닌 보조 치료제로서의 연구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특정 항생제와 병용 시 내성균 억제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향후 항생제 개발 전략에 매우 유의미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물론, 사카린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학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식품에서 의약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이 연구가 당장 병원 진료나 약 처방에 영향을 주는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항생제 무력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전선(New Frontline)을 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제로음료, 무설탕 껌, 당뇨환자용 식품 속 작은 분자 하나가 인류의 건강을 구하는 ‘작지만 강한 무기’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사카린의 가능성입니다.